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문단 편집) ==== 광양자 가설(광자) ==== 빛의 본성이 입자인지, 파동인지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광학을 일으켜 세운 뉴턴 때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뉴턴은 입자설을 밀었다.) 그런데 근대에 이르러 빛이 슬릿을 통과하여 보이는 회절-간섭 무늬 패턴이 빛이 파동이라는 확실한 증거로 나타남으로써, 빛은 파동이라는 것이 정설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맥스웰의 전자기파 이론은 빛이 파동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맥스웰의 전자기파는 빛의 에너지를 강도(intensity)로만 설명하며 진동수(frequency)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실제로, 19세기 말엽에는 빛의 진동수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상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1887년 헤르츠, 1899년 레너드의 논의를 거쳐 확립된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라는 현상이 대표적이다.(광전효과에 대해서는 후술) 한편 독일의 [[막스 플랑크]]는 1900년 [[흑체 복사]]의 자외선 파탄(Ultraviolet catastrophe)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초로 빛은 원자와 상호작용하면서 [math(E = h\nu)]와 같이 불연속적인 에너지만을 교환한다는 '''양자 가설'''(quantum hypothesis)을 도입했다. 이 가설은 흑체 복사 문제를 절묘하게 해결함으로써 [[양자 역학]]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해법은 매우 비약적이었고, 자신이나 동료들이나 이것이 본질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양자 가설의 영향을 받아, 광전 효과 현상이 광양자 개념에 의해 매우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빛이 오랜 시간 공간을 나아가면서 만드는 간섭 무늬 실험은 두말할 필요 없이 파동설을 지지하지만 광전 효과나 흑체 복사는 모두 빛의 방출이나 흡수 순간과 관련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에 착안하여, 아인슈타인은 1905년 논문 에서 흑체 복사, 엔트로피, 광전 효과 등 빛의 방출 및 흡수와 관련된 다양한 현상을 모아서 '''광양자 가설'''(light quanta hypothesis)을 확립하였다. 플랑크와 다른 점은, 아인슈타인은 광양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입장에 가까웠다. 이후 그는 복사 문제 뿐만 아니라 고체의 비열 문제 등에도 양자 가설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광양자 가설은 1905년 기적의 해 논문들 중 아인슈타인이 스스로 "혁명적"이라고 부른 유일한 논문이다.[* 1905년 5월 친구 Conrad Habicht에게 쓴 편지: "이 논문은 빛의 복사와 에너지의 성질에 대해 다루고, 매우 혁명적이야. "(Sie handelt über die Strahlung und die en- ergetischen Eigenschaften des Lichtes und ist '''sehr revolutionär'''...)[[https://einsteinpapers.press.princeton.edu/vol5-doc/81#,|#]]] 그의 광양자 개념은 학계에서 가장 느리게 받아들여진 학설로, 플랑크를 포함해서[* 1913년 아인슈타인을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추천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추측이 가끔은 엇나가곤 했지만('''광양자 가설처럼'''), 이러한 이유로 그를 못마땅하게 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That he may sometimes have missed the target in his speculations, as, for example, in his hypothesis of lightquanta, cannot really be held too much against him...)라 하였다.] '''1920년대까지 물리학계에서 거의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Stuewer(2005) Roger H. Stuewer, "Einstein's Revolutionary Light-quantum hypothesis" [[https://s3.cern.ch/inspire-prod-files-4/447e0b45371520bcc94f20a762d35407|#]]] (1) 맥스웰의 전자기파 이론은 빛의 간섭과 회절을 매우 잘 설명한다. (2)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에 대한 통계적 접근은 생소하고 이해하기 까다롭다. (3) 1910~1913년 연구를 통해 [[조지프 존 톰슨|톰슨]](J.J.Thomson), [[아르놀트 조머펠트|조머펠트]](A.Sommerfeld), [[오언 윌런스 리처드슨|리처드슨]](O.W.Richardson)이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고전적인 방법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4) 막스 라우에(Max Laue) 등은 1912년에 X-ray가 회절된다는 것을 밝혀내 짧은 파장에서도 빛이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5) 보어는 1913년에 수소 원자의 전자가 에너지 준위를 바꾸면서 광양자가 아닌 전자기파가 방출된다고 주장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오랫동안 사실상 유일하게 광양자를 지지하는 학자였다. 그는 10년 가까이 홀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1909년에는 간단한 사고실험을 통해 빛이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가진다는 최초의 '''파동-입자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을 제안하였고, 이 자리에서 훗날 입자설과 파동설을 통합시키는 융합 이론(fusion theory)이 나올 것이라 예견했다. 또, 1916년에는 플랑크가 "불완전하게" 설명했던 흑체 복사 문제를 보어의 원자 모델을 기반으로 최초로 완전히 양자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하였고, 플랑크 공식 [math(E = h\nu)]이 성립한다면 광양자는 [math(p = h\nu/c = h/\lambda)]의 운동량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였다.(빛은 정지질량이 0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결과이다.) 이 결과로부터 아인슈타인은 광양자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면서도 극심한 피로를 느껴 그의 친구 미셸 베소(Michele Besso)에게 1918년(1917년?) 다음과 같이 말했다. > I do not doubt anymore the ''reality'' of radiation quanta, although I still stand quite alone in this conviction. > 이제 복사 양자의 "실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어. 아직 이걸 확신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지만.[[https://einsteinpapers.press.princeton.edu/vol8-trans/641#|#]] 광양자 가설은 1914년 밀리컨의 실험을 거쳐 1922년 콤프턴(Compton)의 산란 실험에 의해 빛의 운동량이 입증되면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BKS 이론이 광양자 개념을 배제하기 위해 등장했으나 1924년 실험적으로 부정되고, 그 때서야 광양자 가설은 완전히 정설로 자리잡았다. 광양자 가설은 1920년 중반 현대적 양자 역학의 발생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루이 드 브로이|드 브로이]]는 거꾸로 물질이 파동의 성질을 갖고 있으리란 발상을 바탕으로 1924년 전자의 파동([[물질파]])이론을 제안하였다. [[드 브로이]]의 이론은 실험적 근거나 맥락이 없었기에 검토하던 교수(폴 랑주뱅, Paul Langevin)는 긴가민가했지만 그의 지인이었던 아인슈타인이 받아보고는 "거대한 베일의 한 구석을 들어올렸다."(He has lifted a corner of the great veil.) [[https://einsteinpapers.press.princeton.edu/vol14-trans/423?highlightText=He+has+lifted+a+corner+of+the+great+veil|#]]며 극찬하고 논문 통과는 물론, 자신 또한 드 브로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문을 학회에 제출하는 등 그의 이론을 퍼뜨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A. Einstein, "Quantentheorie des einatomigen idealen Gases. 2. Abhandlung", ''Sitzungsberichte der Preuss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Berlin), Physikalisch-mathematische Klasse,'' 1925, 3-14][[https://institucional.us.es/blogimus/en/2019/10/the-great-veil-is-lifted-what-if-everything-is-nothing-but-waves/|#]] 아인슈타인의 노력은 드 브로이의 성과가 널리 퍼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에르빈 슈뢰딩거|슈뢰딩거]]는 드 브로이의 물질파를 일반화하여 전자를 파동함수로 기술하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제안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